음악PD 이그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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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pd라고 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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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집을 준비하면서부터 아내와 같이 일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3집의 소설인 ‘끝이 없는 이야기’의 소설가로 시작했는데, 어쩌다 보니 뮤직비디오 에디터까지 하게 돼서, 겸사겸사 하던 일을 접고 본격적으로 이그나이트 사무실에 출근하게 된 것이다.


아내가 사무실에 매일 나오고,  이런저런 제작사다운 일을 벌이면서 두 명뿐이지만, 뭔가 회사 같은 구색이 잡히는 듯하다. 물론 그만큼 집안일이 쌓여가고, 부부싸움이 더 잦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요즘 아내에게 고민이 생겼다. 거래처 사람들에게 나를 뭐라고 지칭해야 할지, 또 보도자료 등을 쓸 때 뭐라고 수식을 해야 할지 말이다.

그동안은, 거래처에는 있어(?) 보이게 대표님, 교수님, 작곡가님 등을 섞어서 쓰고, 보도자료에는 작곡가, 뮤지션, 인디 1인 밴드, 등등 그때그때 마구잡이로 되는 대로 사용하더니 급기야 본인이 느끼기에도 없어 보인다며, 어떤 명칭 하나를 정해야 할 것 같다고 투덜대고 있다.


그래서 결국 얼마 전, 우리는 이그나이트의 명칭을 정하는 회의를 열었다.

아내는 교수님을 강력 추천했지만, 나는 암만 들어도 불편한 단어라 고개를 저었다. 작곡가라고 하기엔 나는 편곡, 작사, 믹스 등 음악 제작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니까 범위가 너무 좁아지는 것 같아서 딱 들어맞지 않았다. 뮤지션이나 아티스트는 입으로 소리 내어 불려지기엔 오글거리며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그렇게 하나씩 후보를 추려가며 아내의 입사 후, 가장 진지하고 긴 회의를 끝낼 수 있었다.


결론은 ‘음악pd'였다.

음악pd. 피디님,  부를수록 입에 짝짝 붙고, 부담이 없어서 마음에 들었다. 또 객원보컬을 영입해서 음악을 만드는 이그나이트의 정체성을 설명하기에도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음악 프로듀서는 영화로 치면 감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음악의 총 책임자이다. 세분화하면 제작비를 책임지는 이규제큐티브 프로듀서와 음악 작품을 책임지는 프로듀서로 나뉠 수 있는데, 보통 음악 자체의 총 책임자를 뜻한다. 그리고 정규앨범 제작 시 원칙적으로는 곡 하나마다 프로듀서가 있고, 곡들을 조율하여 앨범 전체를 완성하는 총 프로듀서가 따로 있다. 예를 들면 총 14곡의 앨범에는 14명의 곡 프로듀서와 최종 프로듀서로 15명의 프로듀서가 존재한다고 보면 된다.


우리나라는 작곡가 출신 프로듀서가 많아서 작곡가와 프로듀서가 혼동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요즘에는 연주자, 엔지니어, 매니저 출신의 프로듀서들도 많아지고, 프로듀스라는 직업의 전문성이 많이 알려져서 작곡가와 혼동되는 경우는 많이 없는 듯하다.


음악pd인 내가 하는 일을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일단 모든 제작비를 내가 낸다. 작곡, 작사 및 편곡도 한다. 녹음, 믹싱 등 엔지니어링, 즉 후반 작업의 경우, 내가 참여하기도 하고 외주를 주기도 하지만 결국 최종 컨택을 하는 이는 나이므로 모든 작접 전반의 과정을 ‘이그나이트’가 직접 컨트롤한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까 하는 일을 곱씹어 볼수록 ‘음악pd’가 내 정체성에 가장 닿아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프로듀서로서 앨범을 내면서, 모든 과정을 나 혼자 직접 일일이 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 적도 있다. 특히 2집의 경우가 그랬다. 음악 제작의 특성상 장비도 필요하고, 아주 전문적인 기술도 필요하니 완전 100% 혼자 완성할 수 없는 것을 알지만, 이그나이트의 음악을 지키기 위해서는 최대한 혼자 작업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을 거치면서 배운 것은, 공부도 많이 하며 실력도 쌓고,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때론 실력자의 조언을 들을 줄 아는 것도 프로듀서의 필요한 덕목이구나 하는 부분이었다.

영화로 치면, 시나리오, 주연, 감독, 촬영을 모두 한 사람이 하여, 작품의 주제를 잘 그려냈다고 해서, 전문가나 대중에게 수작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될까?

음악 프로듀서로서 하나의 멜로디를 컨셉에 맞게 ‘곡’이라는 아름다운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여러 방법을 강구하고, 최종 결정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 단계마다 직접 실행자로 참여하는 것이 프로듀서의 본질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모든 과정에 필요한 인재와 장비를 선택하고 계획을 세우고, 녹음하고, 후반 작업을 해나가는 것. 그래서 완성도 높은 음악작품을 완성해 내는 것. 바로 내가 하는, 음악pd의 일이다.


게다가 개인적인 생각으로, 피디라는 단어는 왠지 감독보다는 젊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하는 일은 같은데, 감독은 소리 지르면서 지시만 하는 40대 베레모 쓴 아저씨 같은데 (물론 그렇지 않은 감독님들도 많이 계시지만.) 피디는 부드럽게 설명하면서 같이 밤새고, 같이 토론하는 느낌이랄까? 드라마 ‘프로듀사’의 차태현처럼 말이다.






그렇게 그날 회의 끝에 우리는 이그나이트를 지칭하는 명칭은 음악pd로 통일하기로 결정했다.

뭐... 그렇다고 내가 음악가, 작곡가, 편곡가, 뮤지션 등의 명칭이 싫다는 것은 아니고, 그냥 명함을 만들 일이 있으면 그렇게 써야지... 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아내가 밖에서 일하기 편하게 만들었을 뿐이고......


그런데 회의가 끝났는데도, 아내는 일어설 낌새도 없이 나를 보며 말했다.

“나도 뭐 하나 줘. 어디 가서 말할 때, 나 누구 부인인데요, 하니까 너무 없어 보여서 싫어, 나도 뭐 하나 만들어 줘.”라는 게 아닌가.


우린 또 아내를, 아니 유일한 직원님을 위해 여러 직함을 두고 토론을 한 끝에 실장님으로 호칭을 정했다.

아내, 아니 ‘성실장’님의 말에 따르면 ‘일반 회사의 부장 부하 실장이 아니라, 드라마에 나오는 재벌 아버지를 뒤에 업고 후계자 수업을 받는, 실질적인 오너인 실장’이란다. 왜냐면 이그나이트의 지분의 70%는 본인 소유라고 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도메인 구매할 때, 내 이름으로 할 것을 쩝.


그러니 여러분,

혹시 언젠가 제 아내를 보게 된다면, 꼭 ‘성실장’이라고 불러주시기 바랍니다.




글, 작성 : 이그나이트, 성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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